
남성 복부비만과 혈관 질환의 관계
배둘레가 혈관 건강의 신호가 될 수 있다
중년 남성의 건강을 이야기할 때 흔히 혈압이나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를 확인하기 전에 집에서도 간단히 살펴볼 수 있는 건강 지표가 있다. 바로 허리둘레다. 체중이 크게 늘지 않았더라도 배가 앞으로 나오고 허리띠 구멍이 한두 칸씩 바뀌기 시작했다면, 단순한 체형 변화로 넘기지 말아야 한다. 늘어난 배둘레에는 혈관 건강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가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 속에 쌓이는 내장지방이 더 위험하다
복부에 쌓이는 지방은 피부 바로 아래에 있는 피하지방과 장기 주변에 축적되는 내장지방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혈관 건강과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내장지방이다. 내장지방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지고 혈당과 중성지방이 높아지기 쉬우며, 혈압 상승과 만성적인 염증 반응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함께 지속되면 혈관 내벽의 기능이 저하되고 동맥경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복부비만은 배에만 지방이 쌓인 상태가 아니다.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제2형 당뇨병과 같은 심혈관 질환 위험 요인들이 서로 연결되어 나타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미국심장협회도 과도한 비만과 내장지방이 고혈압·당뇨병·이상지질혈증 등 심혈관 위험 요인의 발생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고 설명한다.
체중이 정상이어도 배둘레는 따로 살펴야 한다
체질량지수, 즉 BMI가 정상이라고 해서 복부지방까지 안전한 것은 아니다. 팔다리는 비교적 가늘고 체중도 많이 나가지 않지만 배만 나온 이른바 ‘마른 복부비만’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복부지방을 반영하는 허리둘레와 허리·엉덩이둘레 비율은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과 관련이 있으며, 체중만으로는 놓칠 수 있는 위험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한비만학회에서는 성인 한국 남성의 허리둘레가 90㎝ 이상이면 복부비만으로 진단한다. 허리둘레는 갈비뼈의 가장 아랫부분과 골반뼈의 가장 윗부분 사이 중간 지점을 기준으로, 숨을 편안히 내쉰 상태에서 줄자가 바닥과 수평이 되도록 측정한다. 줄자를 배에 지나치게 조이거나 두꺼운 옷 위에서 재면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
배둘레 증가는 혈관 검사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허리둘레가 계속 늘어나거나 남성 복부비만 기준인 90㎝에 가까워졌다면 체중 감량만 생각하기보다 혈압, 공복혈당, 당화혈색소, 중성지방, LDL·HDL 콜레스테롤 등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다. 복부비만 자체는 뚜렷한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그동안 혈관과 대사 기능에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흡연을 하거나 음주가 잦은 사람, 오래 앉아서 일하는 사람, 수면이 부족한 사람, 고혈압이나 당뇨병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허리둘레 변화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검진 수치가 아직 정상 범위에 있더라도 해마다 허리둘레가 늘어난다면 생활 습관을 조절해야 할 시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목표는 체중보다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다
복부비만을 줄이기 위해 무조건 굶거나 짧은 기간에 체중을 크게 줄일 필요는 없다. 먼저 달거나 기름진 간식, 정제된 탄수화물, 야식과 과음을 줄이고 채소, 통곡물, 콩류, 생선과 살코기 등으로 식사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빠르게 걷기와 같은 유산소운동에 하체와 몸통 중심의 근력운동을 함께 실시하면 복부지방 관리와 전반적인 대사 건강 개선에 도움이 된다.
하루 중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한 번에 긴 운동을 하지 못하더라도 식후 걷기, 계단 이용, 짧은 스트레칭과 같은 활동을 반복하면 일상적인 에너지 소비량을 늘릴 수 있다. 체중계 숫자만 바라보기보다 매달 같은 시간과 같은 방법으로 허리둘레를 기록하면 변화의 방향을 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남성의 배둘레는 단순히 옷의 치수를 결정하는 숫자가 아니다. 현재의 식사, 운동, 수면 습관과 혈관 상태를 비추는 생활 건강 지표가 될 수 있다.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로만 여기지 말고, 혈압과 혈당, 콜레스테롤을 점검하고 생활 습관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허리띠 한 칸의 변화에 일찍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심장과 뇌혈관을 지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